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BC 청룡/1985년 (문단 편집) === 후기리그 === ||<#0066b3> '''{{{#white 순위}}}''' ||<#0066b3> '''{{{#white 팀}}}''' ||<#0066b3> '''{{{#white 경기수}}}''' ||<#0066b3> '''{{{#white 승}}}''' ||<#0066b3> '''{{{#white 무}}}''' ||<#0066b3> '''{{{#white 패}}}''' ||<#0066b3> '''{{{#white 게임차}}}''' ||<#0066b3> '''{{{#white 승률}}}''' || ||||||||||||||||<#87CEEB,#0066b3> '''후기리그''' || ||<#ffd700,#968200> 1 ||<#ffd700,#968200> [[삼성 라이온즈]] ||<#ffd700,#968200> 55 ||<#ffd700,#968200> 37 ||<#ffd700,#968200> 0 ||<#ffd700,#968200> 18 ||<#ffd700,#968200> 0.0 ||<#ffd700,#968200> 0.673 || ||<#ffc0cb,#943838> 2 ||<#ffc0cb,#943838> [[롯데 자이언츠]] ||<#ffc0cb,#943838> 55 ||<#ffc0cb,#943838> 32 ||<#ffc0cb,#943838> 0 ||<#ffc0cb,#943838> 23 ||<#ffc0cb,#943838> 5.0 ||<#ffc0cb,#943838> 0.582 || ||<#ffc0cb,#943838> 3 ||<#ffc0cb,#943838> [[해태 타이거즈]] ||<#ffc0cb,#943838> 55 ||<#ffc0cb,#943838> 28 ||<#ffc0cb,#943838> 1 ||<#ffc0cb,#943838> 26 ||<#ffc0cb,#943838> 9.5 ||<#ffc0cb,#943838> 0.519 || ||<#ffc0cb,#943838> 4 ||<#ffc0cb,#943838> [[청보 핀토스]] ||<#ffc0cb,#943838> 55 ||<#ffc0cb,#943838> 24 ||<#ffc0cb,#943838> 1 ||<#ffc0cb,#943838> 30 ||<#ffc0cb,#943838> 13.5 ||<#ffc0cb,#943838> 0.444 || ||<#ffc0cb,#943838> 5 ||<#ffc0cb,#943838> [[OB 베어스]] ||<#ffc0cb,#943838> 55 ||<#ffc0cb,#943838> 22 ||<#ffc0cb,#943838> 1 ||<#ffc0cb,#943838> 32 ||<#ffc0cb,#943838> 15.5 ||<#ffc0cb,#943838> 0.409 || ||<#ffc0cb,#943838> 6 ||<#ffc0cb,#943838> [[MBC 청룡]] ||<#ffc0cb,#943838> 55 ||<#ffc0cb,#943838> 20 ||<#ffc0cb,#943838> 1 ||<#ffc0cb,#943838> 34 ||<#ffc0cb,#943838> 17.5 ||<#ffc0cb,#943838> 0.370 || 김동엽 감독의 빨간장갑 마법은 두 번 재현되지 않았다. 어우홍 체제의 코칭스태프를 물갈이하며 새로운 시작을 천명했고 후기리그 개막하기 전 합숙훈련도 가져봤지만 전반기에 보여줬던 무기력한 모습이 더 심해지며 성적은 오히려 그것보다도 더 떨어졌다. 하기룡-이길환-김봉근 등의 주축 투수진들의 릴레이 부상과 동시에 유종겸-정삼흠-이선희가 근근히 버텨주던 마운드가 후반기 들어 완전히 붕괴해버린 탓에 천하의 김동엽 감독조차 어떻게 손을 써 볼 방도가 없었다. 전반기 바닥을 기던 청룡보다 아래에 위치해 "바닥에는 더 바닥이 있다"는 것을 보여준 삼미에서 이름만 바뀐 [[청보 핀토스]]의 진격과 맞물려 최후의 보루인 5위자리까지 함락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. 결국 창단 이래 최악의 성적인 승률 .370에 6개 구단 중 최하위로 후기리그를 마감했다. 시즌 전 언론의 최약체 진단이 정말로 현실이 되었다. 한 수 아래로 여겼던 해태에 맞대결 10연패에 7월 5일에서 7일까지는 3연전 0득점이라는 굴욕적인 기록도 쓰고 말았다. 그나마 청룡의 체면을 세운건 당시 신기록이었던 [[이광은]]의 19경기 연속 안타[* 이 기록도 시즌 막판 신인왕을 수상한 [[이순철|금지어]]에 의하여 20경기로 갱신되었다.]와 [[김재박]]이 50개의 도루로 도루왕을 차지하며 [[김일권]]의 독주를 저지한 것 정도였다. 서울의 유일한 야구팀이었던 타이틀이 사라진 첫 해 어느새 청룡은 팬들에게 낯을 들기 부끄러운 야구팀으로 추락해버렸다. 하지만 바닥을 기는 팀석적 덕분에 신인들인 [[정삼흠]], [[김용수]], [[박흥식(야구)|박흥식]], [[윤덕규]]가 경험치를 많이 얻어가며 후에 팀을 이끄는 주축 선수들로 성장할 수 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